당당한 사자후
이와 같이 진리에 대하여 철저하게 알고, 실행하고, 마침내 이루어 내었을 때 청정하게 되어 다음과 같은 당당한 사자후를 할 수가 있다.
Khīṇā jāti, 키나 자띠
vusitaṃ brahmacariyaṃ, 우시땅 브라흐마짜리양
kataṃ karaṇīyaṃ, 까땅 까라니양
nāparaṃ itthattāyā 나빠랑 잇탓따야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라한 선언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도의 단계이다. 이와 같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괴로움이 무엇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일곱조각난 머리카락 꿰뚫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 문제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괴로움과 윤회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괴로움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것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아야 할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
“아난다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활쏘기를 하는데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으로 화살을 재빠르게 갈아 매우면서 놓치지 않고 화살을 쏘는 것과 화살촉으로 일곱조각으로 쪼개진 머리카락의 한 올의 그 끝을 쏘아 꿰뚫는 것을 비교하면 무엇이 더욱 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운 것인가?”
(딸라찍갈라경-talacciggalasutta-열쇠 구멍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45(5-5),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화살을 던지고 다른 화살이 꽤뚫는 것과 머리카락을 일곱으로 가른 것을 비교 하고 있다.
꿰뚫어 안다는 것
약 60미터 거리에서 과녁에 맞은 화살 자리에 연달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머리카락을 일곱으로 낸 한 올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는 사성제에 있어서 고성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든 것이다. 그렇다면 괴로움과 윤회의 종식을 위하여 알아야 할 사성제는 어떻게 알아야 할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
아난다여, 이와 같이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는다면, 그것은 꿰뚫기 어려운 것을 꿰뚫는 것이다.
(딸라찍갈라경-talacciggalasutta-열쇠 구멍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45(5-5),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 일곱조각난 머리카락 한 올을 60미터 거리에서 꿰뚫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이는 진리에 대한 꿰뚫음은 긴급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말한다. 꿰뚫음 없이는 괴로움과 윤회를 끝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꿰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꿰뚫음이 위 초전법륜경에서 언급된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에 대한 것이다.
일반범부들에게 닥치는 무서운 과보
대부분 사람들은 서성제를 꿰뚫어 아는 것은 고사하고 괴로움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그래서 무명과 갈애로 인하여 끊임 없이 고통받으며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윤회 할 수밖에 없는데, 결과는 어떤 것일까? 상윳따니까야에서 마지막으로 실려 진리상윳따(S56)에 따르면, 사성제를 모르는 일반범부들에게 닥치는 무서운 과보가 묘사 되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와 어느 쪽이 더 큰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가 훨씬 크고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는 아주 작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를 큰 대지와 비교한다면 수량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에도 미치지 못하고 부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인간과는 다르게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2)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3)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4)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
(안냐뜨라경-Aññatrasutta-다른 곳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61(7-1),전잭성님역)
HD화면으로 제공되는 자연 다큐 프로를 보면 물속에서 물고기가 알을 낳는 장면이 나온다. 한 번에 수백, 수천, 수만개의 알을 낳는다. 그라나 알에서 부화하자 마자 대부분 상위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알에서 부화하자 마자 거의 대부분 죽는 것이다. 이렇게 대량으로 태어 나고, 또 대량으로 죽는 것이 생태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태어남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맹구우목의 비유와 같이 매우 희유한 일이라하였다.
이렇게 뭇삶들의 태어남과 인간의 태어남은 다른 것인데, 이는 사성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인간 중에서도 사성제를 아는 사람이 드믈고 더구나 꿰뚫어 아는 사람은 더욱 더 드믈것이라는 말이다.
거의 대부분 지옥행이다!
맹구우목의 비유처럼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사성제의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죽어서 어디에서 태어날까?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무서운 과보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인간에서 죽어서 인간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인간에서 죽어서 지옥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2)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3)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4)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
(안냐뜨라경-Aññatrasutta-다른 곳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61(7-1),전잭성님역)
부처님은 사성제의 진리를 모르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지옥에 날 것이라 한다. 이를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의 비유를 들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손톱끝에 집어든 흙먼지 처럼 적고, 대지의 커다란 흙처럼 거의 대부분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성제를 모르는 무명으로 인하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과보에 따른 것이라 한다. 이런 비유는 지옥 뿐만 아니라 축생, 아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 나는 것은 지극히 희유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의 것이라고 집착해서
흔히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즐거움 반, 괴로움 반이라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이라는 것 자체는 근본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일체개고’라 하였다.
그런 괴로움은 모두 신구의 삼업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가 의자 위에 올라앉거나 침대위에 올라 눕거나 땅바닥에서 쉬거나 할 때, 그가 과거에 저지른 악한 행위, 즉 신체적 악행, 언어적 악행, 정신적 악행이 있다면, 그것들이 그때마다 그에게 걸리고 매달리고 드리워진다.(M129)”라 하였다. 그래서 과거에 저지른 행위로 인하여 후회와 회환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지나간 일이다. 그 때 그 자리에서 조건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 때의 조건과 지금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후회하거나 회환에 젖어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 (appiyehi)’과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piyehi)’에 따른 괴로움 역시 모두 지난 일이다. 지금의 조건과 맞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
만일 과거의 일로 괴로워 한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건에 따라 발생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붙잡고 있다면, 이는 몸, 느낌, 지각, 형성, 정신 이렇게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에 대하여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온에 집착하는 것, 오취온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태어남으로 인한 운명적 파탄으로 설명되는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즉 슬픔(Soka), 비탄(parideva), 고통(dukkha), 근심(domanassa), 절망(upāyāsā)역시 나의 몸, 나의 느낌, 나의 지각, 나의 형성, 나의 정신이라고 집착해서 일 것이다.
2013-03-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