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전재성님
4. 빠알리 니까야의 정통성과 무도그마성
1) 빠알리 니까야의 정통성
초기경전을 빼놓고는 불교를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이야기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인구에 회자되는 경전들 가운데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 등은 모두 빠알리 니까야에 속해 있는데 매우 일상적이고 알기 쉬운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이다.
이들 경전은 대승불교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이며, 그 내용의 탁월함은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서술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빠알리 경전에 실려 있는 모든 것이 역사적인 부처님에게서 유래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제자들의 기억 속에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부처님에 대한 기억이 맥박칠 때에 수집되어 전승되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디가 니까야의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11)을 읽을 때에 독자들은 부처님의 최후의 생애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전제되어 있다는 인상 없이는 읽을 수가 없다.
이러한 느낌은 신격화된 부처님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는 대승의 《보요경(普耀經:Lalitavistara)》이나 《불소행찬(佛所行讚)》 같은 경전과는 완전히 대조가 된다. 많은 경전과 율장에 있는 계율이 모두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것이라고 한다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완성시킨 정신적인 틀에 끼워맞추어 제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빠알리 경전에 대한 의혹을 너무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경전의 대부분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00년 안에 성립된 것으로 당시만 해도 부처님에 대한 생동하는 기억이 제자들과 민중들 속에 살아 있을 때였다. 특히 가장 오래된 쌍윳따 니까야를 보면 우리는 부처님과 제자들과의 문답 속에서 마치 공자의 《논어》를 읽는 듯하거나, 크세노폰이나 플라톤의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공자의 《논어》나 소크라테스와 다른 점은 빠알리 대장경은 종교적 관점에서 수행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배워 실제 수행했던 필수불가결한 종교적인 지식을 중심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가 되도록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연발생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상황이나 사태 또는 가르침은 판에 박은 말로 구성되어 있어 때로는 지루하게 반복이 된다.
그러나 경전을 외우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반복되는 구절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때때로 리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반복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르침의 암기와 상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경전의 정통성과 사실성을 입증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경전이 인물과 장소만 바뀌면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 불경을 읽는 사람은 마치 《구약성경》에서 인류의 조상의 계보를 읽는 것만큼이나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경전의 경우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순차적으로 읽는 것만으로 경전을 외우게 되고 우리의 잠재의식에 남아 자연스럽게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경전은 또한 전승의 지역적 차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경전이 어느 한 편집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수집되어 편찬된 것을 입증하는 것인데, 이는 빠알리 니까야의 역사적인 실제성과 정통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빠알리 니까야의 분석적 세계관과 무도그마성
부처님이 빠알리 니까야에서 설하는 메시지는 철저하게 분석적인 관찰에 입각해 있다. 이를테면 빠알리 니까야에서 부처님은 마치 두 개의 구멍을 가진 푸대자루에 여러 가지 곡물이 들어 있듯이 이 신체를 32가지의 부정물(不淨物)―머리카락·몸털·손톱·이빨·피부·고기·근육·뼈·골수·신장·심장·간장·늑막·비장·폐·창자·장간막·위장·배설물·담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임파액·침·점액·관절액·오줌―로 가득 차 있는 푸대자루처럼 하나하나씩 그 내용물을 열거하면서 분석적으로 그 부정(不淨)함을 관찰할 것을 권하고 있다.12)
또 다른 신체에 대한 관찰방법으로는 네 가지의 비인격적인 원소인 지수화풍의 4대로써 분석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숙련된 도살자가 소를 도살해서 네 거리에 부분부분을 나누어 놓는 것과 같이 신체의 부분을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로 분류해서 관찰하는 것이다.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에서는 우리의 신체는 내부적인 지수화풍으로 구성되고 있고 일반적인 지수화풍은 외부적인 것으로 나눔으로써 순환적인 생태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카락·털·손톱 등의 개체적이고 거칠고 견고한 것은 모두 내부적인 땅이며, 담즙·가래·고름·피 등의 개체적이고 액체적인 것은 모두 내부적인 물이며, 열·노쇠·소화·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현상 등을 수반하는 개체적이고 에너지적인 것은 모두 내부적인 불이며, 상풍(上風)·하풍(下風)·출식풍(出息風)·입식풍(入息風) 등의 개체적이고 진동하는 것은 모두 내부적인 바람이다.
이처럼 수행에 있어서의 분석적이고 경험적인 관찰은 초기불교 경전의 중요한 특성이다. 붓다는 경험적인 인과원리에 따라 《아쌀라야나경(Assala-yanasutta)》에서 성직권의 신수설을 다음과 같이 부정하고 있다. 인간은 절대신이나 운명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결정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물학적 조건에 따라 태어난다. 성직자들의 아내에게도 월경·임신·출산·수유가 존재한다. 이렇게 성직자들도 동일하게 모태로부터 태어났다.13)
바라문교에서는 월경·임신·출산·수유 등을 부정한 것이라고 보아서 심지어 여아를 초조(初潮) 이전에 더럽혀지기 전에 시집을 보냈다. 붓다가 ‘월경·임신·출산·수유를 갖는 여인’이란 말을 강조한 것은 당시 바라문교의 정·부정(淨不淨)의 사상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것이 인간적인 현상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주장은 상층계급의 성직권의 신수설이나 왕권신수설을 부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신으로부터 태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다. 따라서 범신론적 영구법적 자연법사상은 허구이며 거기에 근거하는 상층계급의 특권적, 또는 선민적인 사상은 거짓이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자유롭다. 명백한 것은 인간은 어느 계급이건 인간적인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신학이나 형이상학의 허구를 드러내어 중도사상이나 공사상을 천명하는 데도 탁월한 논리적인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빠알리 니까야에는 용수의 팔부중도(八不中道)를 능가하는 14부중도의 사상이 등장한다.
이러한 중도적인 분석에 관하여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빠알리 니까야14)는 이러한 분석적인 관찰과 논리적인 분석을 통하지만 그것들을 뛰어넘어 진리의 수호에 관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만일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믿는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좋아함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배운바가 있다면 “나는 이와 같이 배웠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사물에 대한 분석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사물에 대해 분석한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이념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이념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도그마에 입각한다면, 그 도그마는 우리를 외부적으로 증오에 사로잡히게 하고 내부적으로 노예화시킨다.
따라서 부처님은 니까야에서 모든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나는 이와 같이 말한다.”라고 언표하지 “나는 이와 같이 명령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빠알리 니까야는 다른 종교의 타율적인 윤리체계를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윤리체계를 따른다.
3) 빠알리 니까야와 신앙생활
빠알리 니까야에 기록된 가르침은 출가 제자들이나 신도들이 자율적 윤리체계로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선택할 때에는 단지 가르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귀의와 함께 일상의식에서 늘 독송되는 신앙 지침이 된다. 예를 들어 빠알리 니까야에 기록된 오계는 단지 중국에서 번역된 것처럼 불살생·불투도·불사음·불망어·불음주가 아니라 상세한 생활 지침을 내포하고 있다.
이 오계를 붓다 당시의 원어에서 그대로 번역해보면 자명하게 나타난다.
불살생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계행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담론을 포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번째 불투도란 말도 애매하다. 세상이 모두 도둑놈인데 도둑질이 어디 있는가 묻는다면 애매해진다. 그러나 원어에는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는 계행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세번째 불사음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까지 사음으로 규정할 것인가가 애매해진다. 원어를 번역하면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계행을 지키겠습니다.”이다.
네번째, 불망어도 거짓말의 한계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느냐의 논란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지만 원어에 보면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계행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번째, 불음주도 단지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 있는 것에 취하지 않는 계행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재가의 신자들이 지킬 수 있도록 부드럽고 인간적인 계율로 되어 있다.
그밖에 삼보에 대한 귀의도 단순한 삼귀의가 아니라 부처님은 어떠한 분이기에 귀의해야 하는가를 빠알리 니까야에서 배워야 한다.
“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으신 님, 지혜와 덕행을 갖추신 님, 올바른 길을 가신 님, 세상을 이해하시는 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님, 사람들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으신 님, 세상에 존경받는 님이시옵니다.”
가르침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귀의처가 될 수 있는가. 빠알리 경전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세상의 존경받는 님께서 잘 설하신 가르침은 현세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는 가르침이며, 승화시키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이 하나하나에게 알려지는 가르침입니다.” 승가는 어떠한 모임이 되어야 하기에 귀의처가 될 수 있는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승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모임은 훌륭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모임은 정직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모임은 현명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모임은 조화롭게 실천합니다. 이와 같이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모임은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공양받을 만하시고, 대접받을 만하시고, 선물받을 만하시고, 존경받을 만하시고, 세상에 가장 높은 복전이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삼귀의가 이와 같이 일상적 신앙형태로 자리잡고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설해져 있다. 그리고 야쇼다라비가 라훌라에게 지어준 부처님을 찬탄한 시 ‘인간 사자의 노래(naras1-ha ga-tha)’는 널리 재가의 일상생활에서 애송되는 시이다. 부처님이 모든 중생의 아버지, 사생(四生)의 자부(慈父)라는 대승불교의 이념은 야소다라비가 아들을 위해 지은 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붉은 성스러운 두 발은 탁월한 법륜으로 장식되고, 긴 팔꿈치는 성스러운 징표들로 치장되셨고, 발등은 불자(拂子)와 양산으로 분장되셨으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우아하고 고귀한 석가족의 왕자님, 몸은 성스러운 징표로 가득 차시고, 세상의 이익을 위하는 사람 가운데 영웅이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얼굴 빛은 보름달처럼 빛나고 하늘사람과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우아한 걸음걸이는 코끼리의 제왕과 같으시니 인간 가운데 코끼리,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왕족으로 태어난 귀족으로서 하늘사람과 인간의 존귀함을 받는 님, 마음은 계율과 삼매로 잘 이루어진 님,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잘 생긴 목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턱은 사자와 같고, 몸은 짐승의 왕과 같고, 훌륭한 피부는 승묘한 황금색이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훌륭한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고, 혀는 주홍처럼 선홍색이고, 치아는 스무개씩 가지런히 하야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칠흙같은 심청색이고, 이마는 황금색 평판처럼 청정하고 육계는 새벽의 효성처럼 밝게 빛나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많은 별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달이 창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수행자들의 제왕은 성스러운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15)
모든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는 〈자비의 경〉이나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설한 〈행복의 경〉 〈보배의 경〉 등은 누가 읽어도 타당하고 누가 읽어도 아름다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재가신도들이 일상적으로 외우도록 설한 경전들이다.
이를테면 《숫타니파타》의 〈행복의 경〉16)과 같은 독송용 게송의 예를 들어보자.
분수에 알맞는 장소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나누어 주고 정의롭고 친지를 보호하는 것과 행동함에 비난받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악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적당한 때에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적당한 때에 가르침을 논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이옵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지극히 일상적고 합리적인 가르침을 재가신도들이 매일 독송하길 권했다. 부처님의 몇몇 경전은 단지 가르침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신앙으로 발전해왔는데 지옥이나 천상보다는 우리가 탄탄히 발을 딛고 있는 지상에서의 자율적인 참다운 삶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타율적이고 초월적인 대승의 신앙고백을 보완하는 데 손색이 없다. 아마도 우리가 외우거나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반야심경》처럼 외우게 한다면 훌륭한 보살로 성장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각주 11) DN. II. 72. 12) DN. II. pp.294∼295. 13) MN. II. 148. 14) MN. 95. 15) K. Sri Dhammananda. Daily Buddhist Devotions. Buddhist Missionary Society, Kuala Lumpur (1991). p. 216. 16) Stn. 46.
전 재 성
서울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석박사과정 수료(철학박사). 독일 본 대학 박사과정에서 인도학·티베트학 연구. 현재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대표. 역서로 <<디까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쌍윳따 니까야》(1·2·3)<<앙굿따 니까야>> 쿳다까니까야중 -<<우다나, 이띠붓띠까>> 《인도사회와 신불교》 《범본대조 서장금강경》이 있고, 저서로 《빠알리어사전》(1·2) 《거지성자》 《범어문법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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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전재성 박사님은 재가불자로서 빠알리어로 된 부처님말씀을 한국인중 처음으로 니까야를 번역하셨고 4부니까야를 세계최초로 완역하신 분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불교도입니다.
세계 빠알리성전협회의 회원이시며 한국 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십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http://www.kptsoc.org/main.htm
경전 구입 02-2631-1381 농협 02302-417420 국민은행 75221-036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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