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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왜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야 하는가 -빠알리어와 부처님 말씀

writer : 담마 날짜 : 2013-07-21 (일) 20:42 hits : 2313
글쓴이; 전재성님

2. 빠알리 어와 부처님 말씀

1) 부처님 말씀으로서의 빠알리 어

빠알리 어의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마가다 어에 기초한 사교어로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오늘날의 영어처럼 널리 쓰인 보편어(lingua franca)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보편어에 기초해서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불교성전인 빠알리 대장경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기는 부처님께서 범어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의 민중 언어인 지방어나 방언을 사용했다고 알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각 나라의 방언으로 번역되어 이해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으나 여기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이론이 존재한다. 율장의 소품1)에 보면, 두 수행승이 수행자들이 다양한 지방의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방언으로(saka-ya niruttiya-) 부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범문시로(chandaso)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그 표현을 두고 역사적으로 각 학자마다 달리 해석하면서 민중의 언어와 빠알리 어의 권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가 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anuja-na-mi bhikkhave saka-ya niruttiya- buddhavacanam. pariya-pun.itum.
이 문장을 리스 데이비드(Rhys David)와 올덴베르크(Odenberg)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들의 말을 각각 그 자신의 방언으로 배우도록 허락한다(I allow you, O brethren, to learn the word of buddhas each in his own dialect).2)
그러나 붓다고사의 주석을 참고하여 가이거(W. Geiger)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의 말을 그 자신의 언어로 ―즉 부처님이 사용한 언어인 마가디 어로― 배우도록 허락한다(Ihr Bhikkhus, Ich verordne, das Buddhawort in seiner eigenen Sprache d.i. in der vom Buddha gesprochenen s.prache, der Magadhi).3)
두 학자의 번역은 완전히 상반된다. 우선 buddhavacana란 단어를 리스 데이비드는 ‘깨달은 이들의 말’이라고 복수로 해석했고 가이거는 ‘깨달은 이의 말’이라고 단수로 해석했다. 그리고 saka-ya niruttiya-란 말을 리스 데이비드는 ‘그 자신의 방언으로’라고 해석해서 ‘배우는 형제들의 방언으로’라고 해석하는 데 비해 가이거는 ‘그 자신의 언어로’라고 해석하여 ‘깨달은 이가 말한 언어로’라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가 거듭 숙고해 보아도 질문이 귀족적인 언어인 범어를 사용해서 설법해 주시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그때 그때의 속어을 사용해서 다양한 언어로 설법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식자층이나 귀족층의 언어인 범어로 설법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결정적으로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위와 같이 당시의 민중적이긴 하지만 보편어였던 빠알리 어를 사용한다고 답변을 한 것이다.

이것은 가이거의 말에 따르면 스승이 선언한 것 이외의 다른 형태의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가다 어에 기초한 빠알리 어 설법의 보존 이외에 다른 언어에 기초한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빠알리 어는 당시에 인도에서 오늘날의 영어처럼 사용되던 사교어였고 보편어였고 경전은 당연히 빠알리 어로 전승된 것이다. 가이거는 부처님께서 사용한 빠알리는 순수한 속어가 아니고 부처님 이전부터 활발한 교역이 만들어 놓은 높은 지성적 언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빠알리 어로 전승된 대장경이야말로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보존하고 있어 전승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빠알리 니까야의 학문적 중요성

우리가 불교의 기초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명확히 규정지어야 할 때에 어떠한 언어로든 번역된 것에 토대를 둔다면, 잘못 파악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원의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더구나 문법적으로 정교한 인도의 고전어가 한문으로 번역되면 더 이상 그 취지를 올바로 파악하기가 힘들어진다.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연기에 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연기(
緣起)란 말의 빠알리 어 어원은 pat.iccasam-uppa-da이다. pat.icca-sam-uppa-d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복합어는 불교 이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불교 고유의 용어이다. pat.icca는 ‘조건적으로, 연(緣)해서’란 의미이며, samuppa-da는 ‘일어남(起)’ ‘함께 일어남(集起)’ 또는 ‘발생·생성·생기(生起)’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연기란 말은 ‘조건적 발생’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연기의 어원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분석은 아비달마에서 이루어졌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빠알리 어 연기의 원어 pat.iccasamuppa-da의 어원 prati-∨i-tya-sam-ut-pa-da에 포함된 어의의 분석이다. 그것은 어원적으로 ‘의존해서, 또는 조건적으로(prati-∨i-tya) 함께 생기함(sam-ut-∨pad)’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원인의 화합이 이 ‘원인’을 조건으로 ‘결과로’ 향해 가는 까닭에 연(
緣)이라고 하며, 또한 그 ‘원인의 화합이’ 수반된 것들을 생기(俱生)하는 까닭에 기(起)라고 한다.4)

여기서 pat.icca를 pat.imukhamito ‘향해서 가는’이라는 인과의 근접성으로 해석한 것은 pat.icca가 pacceti ‘다가가다, 의지하다’의 절대사(abs.)인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결국 연기란 ‘조건적으로 함께 생겨남’을 의미하지만 한역용어인 연기란 말에서 그 정확한 의미를 끌어내기가 힘들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기사상에 대한 정의를 들 때에 한역 아함경에 나오는 ‘차유고피유 차생고피생 차무고피무 차멸고피멸(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이란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러한 번역은 단지 원인과 결과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나 의존성만을 설하지 조건적이고 구체적인 생성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것은 니까야에 등장하는 빠알리 장경의 원어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원시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아비달마불교나 대승불교에서도 그 근본이 되는 연기사상에 대한 정의로 인구에 회자되는 너무나도 유명한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정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에 관한 분석은 연기 자체의 개념에 대한 분석보다 소홀히 취급되었다.

① imasmim. sati idam. hoti,
② imassuppada- idam uppajjati.
③ imasmim asati idam. na hoti,
④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 5)

위 문장은 필자가 그대로 번역한다면 아래와 같아진다.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나므로 이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므로 이것이 소멸한다.
여기서 “이것이 있을 때에 이것이 있다.(imasmim. sati idam. hoti)”라는 말은 우리의 언어 습관으로는 ‘이것이 있을 때에 저것이 있다.’라고 바꿀 수 있고 빠알리 어의 성격상 ‘이것이 있다면, 저것이 있다.’라고 번역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렇게 놓고 볼 때에 차유고피유(
此有故彼有)라는 한역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이것과 저것의 논리적인 관계나 이유만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인과론을 최초로 정립한 데이비드 흄은 인과론의 기본원칙으로 “원인이 있다면, 언제나 결과가 있다(If C, then always E.).” 라는 원리를 제시해서 인과관계의 조건성·반복성·근접성·필연성 등의 원리를 확립하였다.

이 원리는 놀랍게도 빠알리 니까야가 제시하는 원리와 너무나 동일하다. 서로 전혀 다른 역사적 문화적 전통과 전혀 다른 시기에 발견된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흡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진리의 보편성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원리인 “이것이 생겨나므로 이것이 생겨난다(imassuppada- idam uppajjati).”는 원리는 차생고피생(
此生故彼生)이라는 번역이 잘 뒷받침해 주긴 하지만 빠알리 어 문장으로 볼 때에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라고 원인을 나타내도록 조건적으로 번역한다고 해도 지장이 없다.

이 원리는 불교를 전혀 모르는 서양의 붕게(Bunge)라는 한 현대 과학철학자가 데이비드 흄의 원리를 보정하기 위해 주장한 인과관계의 일반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원인이 생겨나면, 언제나 결과가 그것에 의해 생겨난다(If C produces, then E is always produced by it.).6)”는 원리를 내세워 무인론으로 치닫게 된 현대 서양의 인과론을 보정하여 중도적인 인과관계를 확립하였다.

이렇게 볼 때에 원전의 현대적 번역과 그 의미의 재발견은 경전을 읽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원리에 대하여 역대 논사들은 기본적으로 첫번째 원리의 강조 정도로 치부하였으나 필자는 그것들이 고집멸도의 사성제와 관계가 된다는 것을 《초기불교의 연기사상》이라는 책에서 밝혀 놓았다. 단지 여기서 더 이상 논하는 것은 주제와 맞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각주 1) Vin. II. 139. 2) Vinaya Texts III = Sacred Books of the East XX, p.151. 3) W. Geiger. PA-LI, Literatur und Sprache. Verlag von KarL J. Tru..bner. Strassburg. 1916. p.4. 4) Vism. p.521 pat.imukhamito iti vutto hetu samu-ho aya pat.icco ti, sahite uppa-d-eti ca iti vutto so samuppa-do 5) SN. II. p.28;p.65;p.70;p.96;Ud. p.2;MN. I. p.262;p.264. 6) M. Bunge; Causality and Modern Science. Third Ed. Dover Publications, Inc. New York.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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