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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 나타나는 위빠사나 - 위빠사나의 의의

writer : 담마 날짜 : 2014-11-05 (수) 19:41 hits : 1438
1. 위빠사나의 의의

위빠사나 수행은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의의를 지닐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이 행법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직접 의거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사념처의 위빠사나는 부처님의 유훈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남방불교의 수행 전통에 따르면, ‘위빠사나(觀)’란 곧 ‘사념처의 수행’을 가리킨다. Ven U Sīlānanda, The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 Boston, 1990, p.13 참조; Nyanaponika Thera, The Heart of Buddhist Meditation, third ed., London, 1962 [1953], p.7 참조.

예컨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가르침으로, ‘自燈明法燈明 自歸依法歸依’ 즉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고 법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 이 구절에 대해 求那拔陀羅는 “비구들이여, 자기의 섬에 머물고 자기에 의지하여 머물러라. 법의 섬에 머물고 법에 의지하여 머물러라. 다른 것에 머물지 말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諸比丘. 住於自洲. 住於自依. 住於法洲. 住於法依. 不異住. 不異依)”로 옮긴다. 해당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 異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求那拔陀羅의 번역에 정합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필자는 본 고의 성격상 우리에게 친숙한 번역의 사례를 채용하여 ‘自燈明法燈明 自歸依法歸依.... ’로 옮긴다. 이수창(마성스님), 「自燈明 法燈明의 번역에 대한 고찰」, 󰡔불교학연구󰡕 제6호, 2003, pp.157-184 참조.
는 말씀이 있다. 불자(佛子)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구절인데, 바로 이것이 ‘사념처의 위빠사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련 경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난아, 이 가르침 안에서, 비구는 몸(身)에 대해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삼빠자나(知)와 사띠(念)를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 느낌(受)에 대해... 마음(意)에 대해... 법(法)에 대해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삼빠자나와 사띠를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 아난아, 이것을 일컬어, 비구가 자신을 등불로 삼아(自燈明) 머물고 자신에 의지하여 머물고(自歸依)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한 법을 등불로 삼아(法燈明) 머물고 법에 의지하여 머물고(法歸依)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입멸한] 후에, 자신을 등불로 삼아 머물고 자신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또한 법을 등불로 삼아 머물고 법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곧 나의 제자들 중에서 최고의 비구가 될 것이다.” DN. vol.2. pp. 100-101; DN. vol.3. pp.58, 77 인용.

인용문에 나타나는 내용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3개월 전에 행하신 법문이다. ‘만약 부처님께서 입멸하신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합니까’라고 아난이 질문을 하자, 이와 같이 답변하신 것이다. 바로 이 법문을 통해 ‘자등명 법등명’의 실제 내용이 사념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유훈으로 전승된 사념처의 수행은 모든 불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인증된 가르침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우리의 주변 일각에는 사념처의 위빠사나를 소승의 행법으로 폄하하는 경향들이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마지막 유훈으로 남긴 가르침이 사념처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이를 소승의 관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불교라는 종교 안에서 부처님을 능가하는 또 다른 권위를 내세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법문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사념처관의 의의를 설하는 대목이다. 이 행법이 어떠한 의미와 의의를 지니는가에 대해 부처님께서 직접 밝히신 것이라는 점에서 새겨둘 필요가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한 갈래의 길(一乘道)이 있다. 이것은 중생을 정화하는 길이며, 슬픔과 근심을 초월하는 길이며, 고통과 고뇌를 소멸하는 길이며, 지혜를 증득하는 길이며, 열반을 실현하는 길이다. 이것은 곧 사념처의 수행이다... ” DN. vol.2. p. 290; MN. vol.1. pp. 55-56 인용.
 글- 임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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