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닦음을 두고 세간에는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옳은 것이냐, 아니면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맞는 것이냐 하는 논쟁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 논쟁은 무엇을 닦을 것인가에 대한 맥락을 도외시 한 것으로 사실은 논쟁거리도 되지 못한다.
깨달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단박에 일어나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것은 물은 100℃에서 비로소 끓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비록 물이 서서히 온도가 가열되는 점진적인 과정이 있었더라도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질적인 변화는 100℃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은 의식의 질적인 변화인데, 이 같은 질적 변화는 물기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언제나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래서 돈오(頓悟)라고 일컫는다. 문제는 깨달음 이후에 점진적인 닦음이 필요한가, 아니면 깨달음으로 모든 닦음이 종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참나(본성) 깨달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일어나지만, 참나 자리는 본래 완전하고 청정하여서 더 이상 닦을 것도, 닦음도 필요치 않다. 그래서 돈오돈수가 맞다.
그러나 비록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에고적 습성은 단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육신과 마음, 즉 생각과 느낌과 다섯 가지 감각이 있는 한 에고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고, 또 이 역할을 담당해야만 사람은 현상계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따라서 비록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에고적 성향을 참나와 부합하게끔 如法하게 닦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돈오 이후에 점수가 필요한 것이다.
참나는 완전하고 깨끗하여서 닦을 필요가 없지만, 에고적 성향은 그것이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할 때까지 닦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돈오돈수도 맞고 돈오점수도 옳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하는 논쟁은 필요하지도 않고 본질에서 어긋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