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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깨어나는 소리-캐츠킬산 백림사의 차와 선

writer : 이근수 날짜 : 2012-05-07 (월) 10:49 hits : 1948

       산이 깨어나는 소리- Catskill 산 백림사의 차와 선

                                            이근수(경희대 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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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내린 눈이 캐츠킬(Catskill)산야를 하얗게 덮었다.
나뭇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눈이 설목(雪木)을 만들고 산 가득 들이찬 설목 들이
하얀 숲을 이루니 이곳이 바로 백림사(白林寺)다. 캐나다 동쪽에서 발원한 아팔라치안(Appalachian)산맥이 허드슨 밸리를 따라 남하하다가 뉴욕시 북서쪽과 펜실베이니아 주를
연결하면서 알레게니고원(Allegheny plateau)지대를 조성하고
그 가운데 캐츠킬산을 잉태했다.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이라고도 불렸다는 캐츠킬산은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과 맞먹는 1266m의 높이를 지녔다.
산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양이 과 짐승이 많이 서식했다는 기록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18세기말까지
이 지역에 모여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모히칸 족장의 이름인 캐트(Cat)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인경을 알리는 소리에 새벽잠이 깬다.
창밖에 눈이 소담스레 쌓여있다.
이성선의 시 <겨울산사에서>가 생각난다.

“산이 깨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앉아

시를 쓸까 좌선을 할까 차를 마실까

별빛 내려와 쓸고 돌아간 도량을 돌까

물소리 올라가 얼어붙은 고요한 하늘 위로

산이 깨어나는 소리 하나만 걸려 있다

이것저것 다 놓아두고 그냥 바라보며

눈 안에 그 모습 하나 고요히 앉혀 두자.“

 

눈길을 걸어 법당에 오른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이라곤 절 경내를 혼자 지키는 반야(般若)의 것 밖에는 없다.
이제 열 살이 넘어 노쇠한 기가 역력하지만 두툼한 얼굴은 8각을 이룬 진돗개 상이고
뒷다리 한 쪽을 절면서도 왼 종일 절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믿음직한 백림사의 수호견이다.
법당은 이미 스님의 독경소리로 가득 차있다.
부처님 뒤를 돌아 지하로 난 계단을 내려간다.
법당 지하에 널따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참선 수행이나 연수 장소로도 제격이지만 난방과 환풍이 잘 되고
수장고도 갖춰져 있어 아트 갤러리로도 손색이 없다.
법당상량식을 기념하여 시작되어 13회째를 맞는 지난 해 개산대제(開山大祭) 때
혜성스님의 선서화전과 뉴욕 거주 한국 화가들의 그림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혜성(慧惺)스님이 이 산록에 절터를 잡은 것이 벌써 30년 전 일이다.
작은 시냇물이 한 가운데로 흘러내리고 양쪽에 자리 잡은 절터가 20만평에 이른다.
높다란 언덕 위에 한국 전통사찰양식의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자리 잡고
오른 편에 종고루(鐘鼓樓)가, 왼편 앞 쪽으로는 약사여래부처님상이 앉아있다.
종고루 옆을 돌아 명상길로 들어서 2km 쯤 걸어 오르면 적멸보탑(寂滅寶塔)이 나타난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9층 석탑이다.

17세 어린 나이에 범어사로 출가한 후 통도사와 동래 금강사에서 수학하던 중,
스님은 남해 용문사에서 3과의 부처님 진신 사리를 얻었다고 한다.
1978년 도미 후, 클리블랜드와 디트로이트에서 포교하면서 줄곧 사리를 묻을 절터를
찾아다니던 스님은 1984년부터 캐츠킬에 정착하여 백림사를 창건한다.
목재를 한국에서 들여와 한국 목수의 손으로 절을 짓기 시작한 지 10여년,
1996년이 되어서야 대적광전은 비로소 완성된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8작 지붕 건물에 단청까지 올리니 영락없는 한국 절이
미국 땅에 세워진 것이다.
법당 상량식과 동시에 조성된 적멸보탑 아래 부처님 사리가 안치되고
범종각과 약사여래상이 차례로 세워졌다.
법당 아래쪽으로 요사채가 자리 잡고 그 옆으로 종무소로 쓰이는 2층 건물이 들어섰다.
요사채에서 100m 쯤 떨어진 곳에는 새로 지은 선원이 자리 잡았다.
사무실 겸 접견실, 스무 명은 너끈히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백림사 선다실은
종무소건물 아래층에 꾸며져 있다.
방 세 개와 식당 겸 주방이 일자형으로 늘어선 요사채 식당에 놓인 무쇠 난로가
운치를 더해준다. 장작을 때는 난로 위에는 항상 뜨끈한 차가 끓고 가끔은 간식용인
고구마가 얹어지기도 한다.

  스님과 함께 맨해튼과 뉴저지주 포트리(Fort Lee)에서 차회를 열었다.
스무 명 쯤 되는 사람들이 큰 집 식당에 모여 앉았다.
'백림사 춘설차회'라 이름 붙인 자리에서 스님은 불도를 이야기하고
팽주가 된 나는 편안히 앉아 맛있는 차를 우렸다.
늘 가지고 다니는 달빛차는 어디서나 인기다.
동북쪽으로 멀리 벽소령이 올려다 보이는 지리산 남녘, 화갯골 차밭에서 자라난 차 잎을
정성껏 덖어낸 수제 우전 녹차다.

차회를 마치고 절로 돌아온 스님이 글씨 한 첩을 써주셨다.
‘和思求中(화사구중)’이란 네 글자다.
‘생각을 조화롭게 갖고 중도를 구하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지나침과 부족함을 피하고 순리를 따름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초의가 차신전(茶神傳)에서 설파한 중정(中正)이나 오랫동안 좌우명처럼 벗 삼아 살아온
‘中道正見(중도정견)’의 정신과 상통하는 화두일 듯하다.
중정과 중도의 길이 생각의 조화에서 비롯된다는 선명한 깨달음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 청대의 서화가인 정판교의 서체를 배운 스님의 선화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세로 글이다. 과감한 생략이 있는가하면
세밀한 묘사가 있고 새가 하늘을 날고 고기가 물에서 놀듯 크고 작은 글자가
자유자재로 춤춘다.
스님에게 있어 참선의 세계는 곧 그림이요 차라고 할 수 있다.
사미계를 받은 후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선서화(禪書畵)의 세계와 도미하기 전
다솔사에서 효당(曉堂)을 모시면서 눈 뜨게 된 차의 경지가 선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를 깨달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열리는 법, 번뇌와 보리가 다름이 없고
중생과 스님 또한 차별 없는 것이 불법의 이치라면 불도와 차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차도 불법을 닮아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솔사 효당의 차나 스님이 손수 사리를 수습했다는 금당(錦堂, 최규용)의 차도 이렇게
자유로운 차였을 것이다.

“맑고 깨끗한 게 청정이 아니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분별이 없이
 나와 둘 아니게 보는 것이 청정이다.”

선원다실에 걸려 있는 대행 큰 스님의 법어가 가슴을 적셔온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선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백림사 선원에서
차와 예술의 기운 역시 뭉개구름으로 피어나 봄비처럼 염부제(閻浮堤)를 적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일주일간의 산사생활을 마치고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기며 하산하는
나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반야가 배웅하고 있었다.

견문독송 최소승(見聞讀誦最少乘)이라 했는데
10년을 한결같이 절간을 지키며 독경소리를 들어왔을 노견에게도
불심의 씨앗은 심겨진 것일까, 아니면
아나톨 프랑스의 강아지처럼 먹을 수 없는 하늘의 푸르름을
저 개는 쳐다보지 않는 것일까.

*한국 차인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차인> 지 2012년 5월호에 실린 글을 함께 나누고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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