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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의 성격 3

writer : 지봉 날짜 : 2014-09-22 (월) 14:44 hits : 536

 역사적으로 보아도 저절로 일어난 자기의 종교적 의문을 스스로 정리하고 홀로 스스로 수행하여 독창적으로 깨침을 얻은 예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부처와 조사의 공안을 실행해 보고 시사를 받아 그 의문을 정리하고 방향을 결정하여 노력한 사람들이다.

이미 설한 바와 같이 우주의 일체가 그만큼 완전하게 깨침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면 왜 종교적 의문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직접적으로 그 진리를 보여 주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선은 아직 깨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주도 자연도 고칙도 공안도 반드시 한 번쯤은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전혀 단서를 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경험하게끔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전혀 단서를 잡을 수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고칙공안은 이미 그것을 보여 주는 사람과 고칙공안을 참구하는 사람을 매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수행하는 당사자의 체험을 표현함에 있어서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깨침은 더 이상 전달 대상의 진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깨치지 못한 사람에게는 깨침이 자기 가까이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없는 때가 없고 없는 곳이 없을지라도 그것이 언제 전달될는지 모른다는 의식을 지니게 한다.

내 주변의 전체가 깨침이고 깨침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우주 일체의 사물, 곧 천연의 공안은 진리 그 자체이고, 깨침의 경지 그 자체이다. 깨치고 깨치지 못하고 하는 것에는 하등 경계의 차이가 없다.

 공안이라는 것만으로도 완전하고 위대한 것이다. 어떤 흠도 없이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서 어떤 부족함도 없다.

천연의 공안이 이와 같이 무언이고 절대임에 비하여 고칙공안은 소리와 자취로 나타내어 참선 납자를 유도하고 그 요구를 자극하여 그 성공의 가능성을 믿게끔 한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근본적인 이론으로서 실제상 공안선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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