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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수행법----간화선의 등장

writer : 지봉 날짜 : 2014-09-11 (목) 16:56 hits : 1012
화두와 좌선-선불교의 수행법

간화선의 등장

선종이란 좌선을 주요한 수행 방법으로 삼아 깨침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불교의 종파이다.

불교의 수행은 경전을 독송하는 간경 수행, 주문을 외우는 주력 수행, 좌선을 통하여 깨침을 추구하는 참선 수행, 기타 염불 수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좌선 수행은 좌선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 가운데서도 좌선을 으뜸으로 삼아 일종의 공안, 곧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소위 간화선(看話禪)이다.

간화란 말 그대로 '화두를 본다' 또는 '화두를 보게끔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화두를 들어 통째로 간파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 전체를 체험하여 자신이 화두 자체가 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화두는 달리 공안(公案)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공안선이라고도 한다. 공안이란 공공 문서가 지니고 있는 그 권위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사사로이 처리할 수 없듯이 스승의 준엄한 검증의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그 수행의 경지를 인가받게 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자상승의 원리이다.

이 공안이라는 용어가 맨 처음 등장한 시기는 당나라 시대 황벽 희운 시대였다.

『오가정종찬 五家正宗讚』이라는 책의 황벽 선사 부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후대의 간화선에서 말하는 공안의 본격적인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마찬가지의 경우이지만 직접 공안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으나 의미상으로 보아 스승이 제자에게 일종의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입장에서 공안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후대에 간화선에서 본격적으로 말하는 간화라는 의미에서의 공안, 곧 화두는 당 대 말기의 조주 종심과 임제 의현을 거쳐 북송 말기에서 남송 초기에 살았던 대혜 종고에 이르러서 대성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부처님과 조사들의 기연이 정형화되어 수많은 화두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수행 납자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화두도 다양하여 일상의 생활 하나하나가 화두로 등장한다.

 이처럼 송 대에 화두가 간화선이라는 일종의 화두 참구를 으뜸으로 내세우는 수행 방식으로 선택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대혜 종고 당시에는 공안이 수행 납자들 사이에서 널리 의논되기도 하고 스승과 문답을 하면서 발달해 갔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진실한 깨침의 마음을 구명하기보다는 오히려 형식적으로 흐르게 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공안의 역할을 새롭게 부각할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한 즈음에 대혜는 공안에 의해서 자기의 망상을 제거하는 것을 그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이를테면 대혜는 조주 종심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강조하였다.

조주의 무자화두란 조주와 제자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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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북송 시대에 오조 법연이라는 선사가 그 일화를 예로 들어서 설법한 것으로부터 이후 소위 무자화두로 등장하였다.

무자화두의 요체는 무자삼매에 들어 내외가 타성일편 되는 심경에 도달하여 그것으로써 모든 분별망상의 삿된 생각을 불식해 가는 것이다.

대혜가 무자화두를 통하여 둘째 목표로 삼은 것은 공안에 대하여 대의단(大疑團)을 불러일으켜 그것을 통하여 깨침으로 나아가도록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혜는 공안을 들지 않고 의심이 없이 묵묵히 앉아 좌선만 하는 모습을 경계하였다.

이로써 대혜는 생생하게 공안을 들어 끊임없이 의심에 의심을 더해 가야 한다고 설한다. 따라서 대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통한 깨침을 제일의 원칙으로 삼았다.

 깨치는 데에는 우선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의심을 공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크게 의심할수록 크게 깨친다는 대의대오(大疑大悟)를 강조하였다.

그 방식으로서 대혜는 고인의 공안을 통하여 의심을 일으켜야지 문자를 통하여 의심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경전의 가르침을 통하여 의심을 일으켜서도 안 되며, 일상의 번거로운 가운데서 의심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오로지 고인의 무자를 통해서 의심을 하고, 그 무자를 깨쳐야만 모든 의심덩어리를 꿰뚫어 부처님의 깨침의 심경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대혜에게 공안은 단순한 고인의 공안으로서가 아니라 깨침의 전부였다.

그리하여 대혜의 공안이 이전과는 달리 하나의 공안선, 곧 간화선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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